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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 가는 길/오늘의 한마디

내가 잡고 있던 시간 [부제 : 멍]

가끔은 멈추는 순간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아요

 

기다리던 신호 앞에서

붉은빛이 푸르게 변해도

바뀐 줄도 모른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죠

 

모든 감각이 아둔해져

나도 모르게 무감각 속에 나를 가두죠

 

가벼운 바람이 나뭇결을 쓱 지나치듯

빠르게 지나 보낸 시간을 돌이켜보니

텅 빈 도화지만 같아요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것도

우두커니 서 있는 것도

정지선 앞에 멈춰 있는 것도

적막 속의 고요함도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었죠

 

그러다 문득 나도 모르게 멈춰 선 순간이 찾아오면

붉은빛이 푸르게 변하도록 시간이 흘러도

나는 텅 빈 시간 속에 홀로 남겨져요

 

매일 붉게 빛나는 해도 때가 되면 질 줄 알고

매일 환하게 비추는 달도 때가 되면 질 줄 아는데

나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요

 

붉은 빛이 푸르게 변하면 다시 시작되듯이

어스름한 새벽에 붉은 해가 다시 떠오르듯이

차가운 공기에 은은한 달이 다시 떠오르듯이

 

잠시 모든 게 고요해지는 정적의 시간이

갑자기 찾아오지 않도록

내가 먼저 어느 때마다 그 안에 멈춰갈게요

 

한번쯤 정지선에 잠시 멈추어도 다시 출발하듯이

언젠가 다시 걸어갈 시간이 돌아올 테니

 

더 이상 우두커니 멈춘 채로

다시는 흐르지 않을 것 같은 걱정은 묻어둘게요

 

꽃이 피고 지듯

가을이 왔다고 부는 바람처럼

때가 되면 부는 바람이

지금의 시간을 다음 페이지로 넘겨줄 테니까요

 

 

▶ 해석 : 우리는 가끔 바쁜 일상에 쉬어가는 방법을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대부분이 나와 같은 모습이라 잘못된 줄도 모른채 말이다. 자연도 쉬어갈 때를 알고 다시 걸어가야 할 때를 알듯이 우리도 멈추어야 할 때를 알고 다시 시작해야 할 때를 아는 게 필요하다. 멈추면 그 시간이 오래도록 다시 시작되지 않을까 봐서 혹은 다시 시작하는 걸음이 어려울 것 같은 불안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잠시 멈추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자연스레 다시 다음을 준비하고 시작하려는 본능이 있다. 그러니 자신에게 잠시 쉬어갈 틈을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도 준비가 되지 않은 채 모든 게 마비가 된 듯이 멈춰버릴 테니까. 그러지 않도록 나의 호흡을 읽고 알아가 주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게 때로는 '멍 때림'과 같은 짧은 시간이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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